Korean Tr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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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변천사 | 도안은 1883년, 그리는 법은 1949년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장에 성조기와 나란히 걸린 깃발이 있었습니다. 미국 함정 스와타라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태극기의 첫 장면은 궁궐이 아니라 배 위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 1883년 3월 6일에 정해진 것은 도안의 원칙이었고, 그리는 방법은 비어 있었습니다
  • 작도법이 확정된 날은 1949년 10월 15일. 그 사이 66년의 태극기들은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
  • 데니·진관사·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2021년 보물이 됐고, 지금 국보 지정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첫 태극기는 궁궐이 아니라 배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882년 미 해군 『해상 국가들의 깃발』에 실린 도안
1882년 미 해군 『해상 국가들의 깃발』에 실린 도안

조약을 앞두고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장소는 스와타라호 함상이었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가 5월 22일 조인식에서 성조기 옆에 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태극기의 출발점입니다.

도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미 해군이 1882년에 펴낸 도안집 『해상 국가들의 깃발』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기록입니다.

같은 해 9월,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수신사로 일본에 갑니다. 그 배 위에서도 태극과 4괘를 넣은 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두 깃발을 견주면 4괘의 좌우가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원조냐를 두고는 지금도 견해가 갈립니다.

여기서 판정을 내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 이 어긋남이 왜 생겼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1883년에 정해진 것은 원칙이었지 그리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1883년 국기로 제정된 태극·4괘 도안
1883년 국기로 제정된 태극·4괘 도안

1883년 3월 6일,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과 4괘 도안을 국기로 제정하고 공포했습니다. 태극기의 역사를 흔히 이 날짜로 끊습니다.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이때 정해진 것은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를 넣는다는 원칙까지였습니다. 정확한 제작 방법, 그러니까 작도법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태극을 어느 방향으로 돌릴지, 4괘를 어느 모서리에 놓을지가 빈칸으로 남았습니다. 그 빈칸이 곧바로 메워지지도 않았고요.

작도법이 확정된 해는 1949년입니다. 1883년부터 세면 66년입니다.

저라면 이 시기의 태극기를 놓고 "어느 게 맞느냐"를 먼저 묻지 않겠습니다. 기준이 없던 때의 물건이라면 그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기준이 없던 66년 동안 태극기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 66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몇 점은 이름까지 붙어 있고요.

먼저 데니 태극기입니다.

미국인 오언 데니(1838~1900)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때 태극기를 가지고 갔고요.

그 깃발이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입니다. 제작 연도는 자료마다 갈려서, 데니가 고문으로 있던 1886~1890년 사이의 것으로 봅니다.

데니 태극기 도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물 기준)
데니 태극기 도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물 기준)

크기가 세로 185cm에 가로 268cm입니다. 성인 키를 넘깁니다.

흰 광목 두 폭을 이어 바탕을 만들고, 붉은 천과 푸른 천을 오려 바느질해 태극을 앉혔습니다. 인쇄가 아니라 바느질입니다.

천을 오려 바늘로 붙이는 방식이라면 한 장 한 장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찍어 내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2008년 8월 12일 국가등록문화재가 됐고, 2021년 10월 25일 보물이 됐습니다.

다음은 안중근의 혈서 태극기입니다. 이 시기의 태극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안중근 혈서 태극기 — 4괘 자리에 大韓獨立 네 글자가 혈서로 쓰여 있다
안중근 혈서 태극기로 전해지는 도판. 원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1909년 2월,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서 안중근과 동지 11명이 모입니다.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 놓고 저마다 왼손 약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피로 '대한독립' 네 글자를 썼습니다.

이 모임이 동의단지회, 흔히 말하는 단지동맹입니다.

그림을 보면 무엇이 다른지 바로 보입니다. 건곤감리 4괘가 있어야 할 네 자리에 大·韓·獨·立 한 글자씩이 대신 들어가 있습니다.

태극의 음양 문양도 지금과 반대입니다.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라면 그렇게 부르지 않겠습니다. 기준이 아직 없던 때이고, 무엇보다 이건 규격을 지키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태극기는 실물이 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모습으로 전해지는 도판입니다.

10년쯤 뒤로 가면 진관사 태극기가 있습니다. 2009년 서울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3·1운동 직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든 방식이 남다릅니다.

일장기 위에 먹으로 태극과 4괘를 덧그렸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실물 — 일장기 위에 먹으로 태극과 4괘를 덧그린 형태
진관사 태극기 실물. 태극의 붉은 쪽이 원래 일장기의 동그라미다

사진을 보면 태극의 붉은 반쪽이 유난히 동그랗습니다. 그 자리가 원래 일장기의 동그라미였습니다.

나머지 반쪽과 네 귀퉁이의 괘는 먹으로 얹혔습니다. 천도 여기저기 삭아 있고요.

급히 만든 흔적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그 시기의 진짜 태극기였습니다. 기준이 없던 시기라는 말은 이런 것까지 품습니다.

그 해체 작업이 없었다면 그대로 묻혀 있었을 물건입니다.

2010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2021년 10월 25일 보물이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3·1운동을 놓고 정반대 방식으로 남은 물건도 있습니다.

태극기 목판 — 3·1운동 때 태극기를 찍어 내기 위해 나무에 태극과 4괘를 새긴 판
태극기 목판. 태극 자리에 붉은 안료가 아직 남아 있다

독립기념관에 있는 태극기 목판입니다. 등록문화재 제385호이고요.

손으로 한 장씩 그린 게 아니라, 나무에 태극과 4괘를 새겨 놓고 찍어 냈습니다.

가로 32cm, 세로 30cm에 두께가 6.5cm입니다. 4괘가 네 모서리까지 꽉 차게 조각돼 있고, 둘레에는 1.8cm 남짓한 테두리가 둘러 있습니다.

3·1만세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 내려고 만든 것입니다. 거리마다 태극기가 일시에 뿌려진 데는 이런 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앞의 이야기가 한 겹 뒤집힙니다. 작도법이 없던 시기라고 해서 전부 제각각 손으로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판을 쓰면 찍어 낸 것끼리는 똑같습니다. 판 하나가 그 지역의 기준 노릇을 한 셈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쓴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쓴 태극기

마지막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입니다.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샤를 메우스 신부에게 건넨 것입니다.

미국 동포에게 전해 달라며 광복군 지원을 호소하는 친필이 적혀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고, 2021년 10월 25일 보물이 됐습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실물 — 오른쪽 여백에 광복군 지원을 호소하는 친필이 세로로 적혀 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실물. 오른쪽 여백을 글씨가 가득 채우고 있다

글씨는 깃대 쪽 여백에 세로로 내려씁니다. 한글과 한자가 섞여 있고, 끝에는 날짜와 붉은 도장이 있습니다.

태극과 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천을 오려 붙인 자리마다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보입니다.

깃발에 글을 적어 사람 손에 들려 보냈다는 점이 눈에 남습니다. 이 시기의 태극기는 걸어 두는 물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깃발이 특히 귀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1942년 6월에 태극기 제작규정을 통일하는데, 이 태극기는 그 직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정부가 서기 전에도 규정을 세우려는 시도는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것이 온 나라의 기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광복은 왔는데 규격은 오지 않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태극기를 다는 일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정작 통일된 규격은 없었습니다.

광복 직후~1948년에 쓰인 형태
광복 직후~1948년에 쓰인 형태

달아야 할 자리는 늘었는데 기준은 그대로 없었습니다.

만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태극기가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비어 있던 칸이 그대로 따라온 셈입니다.

1948년 7월 12일, 제헌국회가 태극기를 국기로 공식 제정합니다.

1948년, 원칙만 정해져 있던 시기
1948년, 원칙만 정해져 있던 시기

이때도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라는 원칙까지였습니다.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여러 규격이 동시에 통용됐습니다.

비어 있던 칸은 1949년 10월 15일에 채워집니다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가 꾸려집니다. 그리는 법을 정하기 위한 기구였습니다.

그해 10월 15일 '국기제작법'이 확정·발표됩니다. 1883년의 제정으로부터 66년 만에 도안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1949년 국기제작법 고시로 통일된 도안
1949년 국기제작법 고시로 통일된 도안

이후로도 손질은 이어집니다. 1984년 2월 21일,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됩니다.

그전까지 '국기제작법'과 '국기게양방법에 관한 건'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1984년 규정 통합 이후
1984년 규정 통합 이후

2007년 7월 27일부터는 '대한민국 국기법'이 시행됩니다. 만들고, 달고, 다루는 일의 지침이 여기서 나옵니다.

규격이 정해진 뒤에도 손으로 만든 태극기는 남았습니다

1949년에 그리는 법이 정해졌다고 해서 그날부터 모든 태극기가 같아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 —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전시된 실물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자유의 깃발'이라는 이름으로 걸려 있다

1951년, 북한 지역에서 탈출하던 피난민이 지니고 있던 태극기입니다.

피난민의 배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이 깃발이 유실됐고, 미 해군 조지 휘트만 소위가 습득해 미국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거기서 끝났다면 지금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와 그의 아들 존 휘트만 미 육군 중령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 근무하던 1987년 8월 31일, 부대 앞 동두천 광암동사무소에 이 태극기를 기증합니다. 습득한 지 36년 만입니다.

지금은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있습니다. 2021년 10월 27일 경기도 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색이 거의 다 빠져 태극의 경계가 흐릿합니다. 그래도 네 귀퉁이의 괘는 남아 있습니다.

세 점 다 보물이고, 아직 국보는 없습니다

국가유산청이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세 건을 대상으로 국보 지정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6년 8월 현재 국보로 지정된 태극기는 없습니다. 세 점 모두 보물입니다.

1997년 색 표준이 정해진 현행 태극기
1997년 색 표준이 정해진 현행 태극기

오늘 거리에 걸린 태극기는 도안이 전부 같습니다. 그게 당연해진 것은 1949년 이후의 일이고요.

140여 년 사이에 배 위에서 급히 만든 깃발이 있었고, 잘린 손가락의 피로 쓴 깃발이 있었고, 일장기를 덮어 그린 깃발이 있었습니다.

나무판에 새겨 찍어 낸 것도, 서명이 빼곡한 것도, 피난길에 품고 나온 것도 있었습니다. 전부 태극기였습니다.

그리는 법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다는 법, 그러니까 게양 시간과 조기 다는 방식은 국기법이 따로 정해 두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태극기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나요?

1882년 5월입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앞두고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해 미국 함정 스와타라호 안에서 만들었고, 5월 22일 제물포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습니다.

최초의 태극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견해가 갈리는 사안입니다. 기록으로는 1882년 5월 이응준이 만든 기가 앞섭니다.

같은 해 9월에는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가는 배 위에서 태극과 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두 도안은 4괘의 좌우가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무엇인가요?

데니 태극기입니다. 고종의 외교 고문이던 미국인 오언 데니가 귀국하며 가져간 것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실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습니다. 세로 185cm 가로 268cm이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태극기 작도법은 언제 확정됐나요?

1949년 10월 15일입니다. 1883년 3월 6일 국기로 제정될 때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라는 원칙만 정해졌고,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가 꾸려진 뒤 그해 10월 '국기제작법'이 확정·발표됐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태극기가 있나요?

없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2021년 10월 25일 보물로 지정됐고, 국가유산청이 이 세 건을 대상으로 국보 지정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시기별 국기 그림 9장은 위키미디어 공용의 퍼블릭 도메인·CC0 파일입니다. 유물 사진이 아니라 도안을 그린 그림이며, 데니 태극기 도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물을 따랐습니다.

진관사 태극기·태극기 목판·김구 서명문 태극기·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실물 사진이며, 국가유산포털의 공공누리 개방 자료입니다. 소장처는 차례로 진관사,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입니다.

안중근 혈서 태극기만은 실물 사진이 아닙니다. 원본이 전하지 않아, 그 모습으로 전해지는 도판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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